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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All posts 4.

  1. 읽은책모음 2008/07/11
  2. 아마데우스 (1) 2008/02/29
  3. 트루먼 쇼 (1) 2008/02/29
  4. 이성과 감성 (1) 2008/02/29

읽은책모음

리뷰/책 2008/07/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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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리뷰/영화 2008/02/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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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그러나 그의 삶은 그 천재성과는 대비되는 온갖 고통들로 채워져있다. 아니.. 오히려 천재성과 고통은 공존하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 신이 하사한 능력

모짜르트의 능력에 느낀 좌절감으로 인생을 망칠 수 밖에 없었던 살리에리는, 신이 모짜르트에게 재능을 하사했고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모짜르트의 재능은 신이 내린것인가. 이 문제는,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음악적인 식견이 매우 부족한 나로서는 더더욱이나 판단하기 힘든 논의인 듯하다.

어쨌든 살리에리는 그의 재능은 신이 내린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신을 원망하기까지 이른다. 이 부분은 삼국지의 유명한 "신이여 왜 이 세상에 중달을 보내고 공명까지 보내셨습니까?"라는 위의 지략가 사마의의 절규가 떠올랐다.


- 천재로서의 삶

천재의 삶을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천재가 아닌(정확히 말해, 천재인 것 같지는 않은) 나의 삶은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천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아... 난 모짜르트처럼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겠구나. 나에겐 저런 재능이 없구나.

그러나 모짜르트의 삶은 전혀 부럽지 않았다. 그가 가진것은 천재성과 열정 뿐이다. 물론 그것도 한 사람이 삶을 살면서 추구해야 할 많은 가치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고,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짜르트는 그 "무언가"를 빼먹고 살았다. 결국 그의 불행은 모두 그가 자초한 것이고 그런 결말에 이르렀다면, 천재라든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든가 하는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게 내 생각이다. 이건 신이 있다, 또는 없다 든지 기타의 종교적인 개념을 떠나서 생각하는 문제다.

음.. 천재로서의 삶이 부러워할만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평범한 사람으로 가치있게 사는게 훨씬 숭고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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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내일의 춘 2008/02/25 00:3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천재라..나 역시 가장 부러운 사람은 세상 참 재밌고, 즐겁게 사는 사람.

트루먼 쇼

리뷰/영화 2008/02/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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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보면서 내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트루먼이라면? 오 맙소사...


영화에서는 두가지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트루먼을 가둔 것을 합리화 시키는 프로그램제작자 크리스토프 등의 부류 v. 그런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그 견해와 대립하는 실비아와 같은 부류

각자의 주장은 그럴듯하다. 크리스토프는 역겹고 거짓뿐인 현실과는 다른 섬도시에 트루먼을 살게한것은(비록 사생활보호가 전혀 안되고 있긴 하지만) 트루먼에게도 득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트루먼은 그 도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난 계속 영화내 크리스토프가 하는 짓에 대해 못마땅한 입장이었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는 나름 설득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판단하기엔 영화의 설정자체가 다소 터무니없기 때문에(그나이먹도록 그런사실을 몰랐다든지, 현실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갖춰질수 없다든지, 만약 가능하더라도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든지 하는문제) 깊은 고찰은 어렵지않나 싶다.

반면에 실비아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갖혀사는 트루먼의 삶은 너무 가여운 것이며,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는 것이다.

나도 이견해에 동조하며, 영화자체도 이 견해에서 만들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트루먼쇼는 상식 밖이라고. 영화에서 쇼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참 뭐랄까.. 현실과 동떨어진거 같달까. 트루먼쇼와 같은 TV프로그램을 보고 단순히 열광하고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라면..

노노.. 그런 세상이 있을리도 없다. 난 인간의 자정능력을 믿는다.


이것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해서 생각한다면 프로그램제작자를 신적인 존재로 보고(날씨를 바꾸는 등) 트루먼을 우리 인간들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신을 통렬하게 비판한 영화가 된다. 신을 부정하고 그 지배하에서 떠나가는 것이 잘하는 짓이라는 결론이 되니..

그러나 과연 신이라는 존재(있다는 전제하에)를 크리스토프와 동일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의문이다. 신이라고 보기엔 크리스토프의 행동들은 너무 이유도없고 납득하기 어렵다. 저건 뭐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게 아닌가.

혹시 모르겠다. 기독교의 원죄론을 떠올린다면 그 가혹함의 근거를 좀 더 주장할 수 있을지도. 그러나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엔 아직 내 생각의 깊이가 깊지못한 듯하니 이만 적어야겠다.


보기에 따라서 참 여러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구성이 허술한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너무 삐딱하게 생각하는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재밌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라고 하면 뭐 딱히 할 말도 없다.

근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기만 해서야 무슨 재미로 살까... 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살련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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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내일의 춘 2008/02/29 00: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트루먼쇼에 대한 감상을 넘어 분석이군 ㅎㅎ

    비슷하게..일본영화 사토라레를 보고 난 후, 가끔식 사람들이 다들 내 속마음을 듣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 트루먼쇼는 이런게 없었지만, 사토라레는 정말 와닿았다 해야 하나..종종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성과 감성

리뷰/영화 2008/02/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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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언니와 감성적인 동생이 각자의 사랑을 해가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어려움에 부딪히며 서로의 모습에서 메타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켜 간다.

그에 따른 두 자매의 심정의 변화를 통해 두가지 성향의 장단점을 고찰해간다.

엘리너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사랑하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질만한 행동만을 한다. 누구든 그들을 욕하지 않고 헤어짐으로 인한 고통도 혼자 삭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에게는 많은 부담을 지우는 가혹함을 동시에 갖는다.

그러나 메리앤은 절대 자신의 감성을 절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더 없이 충실하다. 자신에게 절제를 통한 부다을 주는 일 따윈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후자쪽이 좀 더 강하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p.264 똑똑하고 성격좋은 사람이 반이 넘는다면 메리앤도 거기 속하는 세상 사람 반처럼 뛰어난 능력과 성품을 겸비하고 있지만, 분별도 없고 공정성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한테서 자기와 똑같은 의견과 감정을 기대하였고, 그들의 행동이 자기에게 곧바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동기를 판단하였다.


제인오스틴은 위와 비슷한 견해를 책에서 줄곧 견지한다. 대체적으로 이성적인 엘리너를 옹호하고 메리앤을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딱 갈라서 양자중 무엇이 옳다고 할 순 없을것 같다. 나 자신도 스스로 이성에 좀 더 치우친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수록 메리앤처럼 자신의 감성에 충실한 모습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수 없다.

냉철한 이성과 자기에 충실할 수 있는 따뜻한 감성. 한 때 군시절 내 관물대에 좌우명으로 붙어있기도 했던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게" 라는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이성과 감성. 잡을수 없는 두마리의 토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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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정 2008/07/13 03: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러게요. 이성과 감성 잘 조율할 순 없는 걸까요?